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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쩰의 시기- 을미사변과 아관파천-
김영수 저
₩23,000
叛卖中
景仁文化社
Hardcover
A5
300 页
2012.03.30
9788949908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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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국내외 학계는 을미사변과 관련하여 가장 핵심자료인 러시아를 비롯한 열강의 외교문서를 총체적으로 이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건 자체에 대한 완벽한 복원을 진행할 수 없었다. 저자는 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에서 을미사변 관련 자료를 주목했다.
주한 외국공사의 보고서 중 러시아공사 베베르(К.И. Вебер)는 1895년 10월 9일 러시아 외무대신 로바노프(А.Б. Лобанов-Ростовский)에게 을미사변에 관한 장문의 보고서를 보냈다. 이 보고서에는 15장 분량의 본문, 현장의 생생한 증언을 담고 있는 11개의 부록, 경복궁에 대한 상세한 1개의 지도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 보고서가 10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주목받은 이유는 주한 외국공사의 보고서 중 가장 상세하게 을미사변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 중 을미사변을 목격한 러시아인 사바찐(Середин-Сабатин А.И.)의 증언과 보고서는 저자에게 충격이었다. 당시 사바찐은 을미사변 당일 현장에서 매 시간마다 사건의 추이를 확인했고, 새벽 5시가 넘어서는 15분 단위로 상황을 파악했다. 그래서 그 어떤 증언과 보고서보다 사바찐의 기록은 을미사변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저자는 대외정책문서보관소의 을미사변 관련 자료를 살펴보면서 사건현장의 생생한 복원을 꿈꿀 수 있었다.
그 동안 ‘을미사변과 아관파천’에 관한 학문적 관심이 많았고, 그 성과도 상당하다. 하지만 한국사 분야에서의 연구 성과는 주로 정치세력의 대립, 즉 대원군과 명성황후라는 대립구도로 설명되었다. 그 배경에는 국내외 연구는 대체로 을미사변과 아관파천을 일본측 사료에 기초하여 연구를 진행했다. 특히 일본자료에 근거한 일부 연구자들은 을미사변과 아관파천의 본질을 단순한 정권 쟁탈전으로 간주하였다. 이 견해는 을미사변과 아관파천에 등장하는 다양한 국내 정치세력이 외국 공사관의 ‘꼭두각시’라는 생각과 연결되었다. 이러한 기존 시각을 극복하기위해서 저자는 을미사변과 아관파천을 전후한 시기의 정치적 분쟁이 정책적 견해 차이를 수반했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리고 을미사변과 아관파천에 표출된 정치적 분쟁을 근대적 개혁의 구체적 방법을 둘러싼 대립으로 살펴보았다.
프롤로그 주요인물 경복궁전도 러시아문서보관소 건청궁과 곤녕합 제1부 을미사변 머리말. 을미사변에 관한 의문과 논쟁 1장. 러시아의 부상과 일본의 대응 2장. 대원군의 침묵과 명성황후암살의 배후 3장. 러시아인 세레진 사바찐의 하루 4장. 열강의 대응과 타협 맺음말. 왕비의 죽음, 그 배경과 이유 제2부 아관파천 머리말. 아관파천의 전개와 파장 5장. 춘생문사건과 정국변동 6장. 아관파천과 러일협상 7장. 아관파천 이후 한러관계 8장. 고종의 정국구상과 궁내부의 세력변동 맺음말. 대한제국의 정치변동과 국제정세의 변화 에필로그 주석 찾아보기
김영수